파랑의 결

파랑의 결

일정
장소
갤러리 공간 35

무거운 여름이었다. 온 산천이 거대한 찜통이었다. 뜨거운 공기에 짓눌리는 기분을 느끼며 매일 작업실에 갔다. 마침 발목과 무릎에 염증이 생겨 움직임이 무척 느렸기에 바깥에 서 있는 동안은 시간도 무거웠다.

열기를 식힌 뒤 그림을 시작하면 파랑색에만 손이 갔다. 오직 파란 것만 보고 싶었다. 그때는 물건도 전부 파랑 계열로 살 정도로, 한동안 파랑에 빠져 있었다. 파랗고 푸른 그림들이 여러 점 쌓였을 즘, 내 의식에 파랑이 어떤 상징으로 자리잡은 건지, 내게 뭘 말하고 있는 건지 생각해 봐야했다.

아주 드넓고 쾌청한 것을 볼 때의 긴장감. 쭉 뻗어 튀어나갈 것만 같은, 도약할 때의 짜릿함. 불안한 가운데 살아 있는 생생함. 나는 늘 그런 감각과 반대되는 순간에 민감했다는 걸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굴레를 의식할 때. 원래 늑대였을, 펜스에 갇혀 땅을 파다 탈진한 개를 볼 때. 무기력한 눈 뒤에 가려진 고유성을 떠올릴 때. 그것들이 원래대로 빛을 발한다면.

그림의 일부는 부자유에서 비롯된 좌절과 고립감을 연료 삼아 폭발적이거나 확장되는 듯한 이미지로 변환되었다. 나는 꿈에서 얻은 극복의 상징과 현실의 경험들을 함께 배치하기도 했다. 또, 날씨와 질병으로 인해 한동안 접촉할 수 없었던 자연에 대한 그리움으로 돌아오곤 했다.

주재료인 수채 물감과 한지는 맑고 가벼운 성질에 끌려 사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종이를 손가는 대로 찢어 겹쳐 바를 때 귀에 닿는 소리와 전해지는 손의 감각에서 물질이 주는 안도감을 느낀다. 나는 그림을 보는 이들에게도 바스락거리는 종이와 붓질하는 소리가 들리길 바란다.

간단한 구상에서 시작한 그림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나도 예측할 수 없다. 행위는 그 전의 행위를 지우기도, 강화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약간은 막막한 기분으로 작업을 시작하지만, 그 ‘막연한 긴장감’이 작업을 지속하는 동기가 된다.